‘인류는 100년 안에 식물의 광합성 과정에 대한 비밀을 알아낸 후 건조한 사막지대 여기저기에 식물보다 더 높은 효율로 물질과 에너지들을 생산하게 될 것이다. 태양에너지를 사용하는 문명이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문명보다 인류를 더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100여 년 전인 1912년 이탈리아의 광화학자 겸 상원의원 자코모 치아미치안(1857~1922) 박사가 유명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밝힌 내용이다.
치아미치안 박사의 예언은 당시 과학자들의 식물 광합성 원리에 대한 호기심이 바탕이 된 것이다. 예언은 곧 후배 과학자들에게 내준 ‘숙제’와도 같았다. 그의 예언대로 100년 뒤 과학자들이 숙제를 풀어낸다면 인류는 최대 과제인 에너지 문제에서 해방되는 것은 물론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한 지구온난화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100년하고도 수년이 더 지났지만 치아미치안 박사의 예언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다.
하지만 신이 만들어 놓은 식물 광합성의 원리는 인류의 실험실에서 천천히 한 꺼풀씩 벗겨지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식량 생산, 고갈되기 시작하는 에너지들…. 이런 인류의 절박함이 과학자들의 도전으로 이어진 결과다. 사실 식물 광합성의 핵심 원리는 풀 한 포기가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빛, 뿌리에서 올라오는 물(H2O),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이산화탄소(CO2)를 받아들여 산소(O)와 탄소화합물인 포도당·녹말 등으로 이뤄진 열매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화학식으로 따지면 포도당은 C6H12O6인데 녹말은 포도당이 많이 뭉쳐 있는 형태로, 모두 원소인 탄소(C)와 수소(H)·산소(O)의 조합이다. 인류가 인공적으로 식물 광합성을 그대로 재연할 수만 있다면 연료(알코올)와 식량(녹말)까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물 분자가 분해되면서 자연상태에서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 원소이며 미래 에너지로 떠오르는 수소도 얻을 수 있다.
지난 13일 국내 인공 광합성 연구의 나름 큰 성과가 나왔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연구팀이 햇빛을 빨아들여 수소를 생산하는 효율이 8%에 이르는 ‘인공 나뭇잎’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학교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이재성 교수팀이 이를 이뤄 낸 주인공이다. 이 교수의 인공 나뭇잎은 물과 햇빛을 원료로 양분을 만드는 나뭇잎처럼 햇빛을 이용해 수소연료를 생산하는 반도체 소자다. 그의 연구는 최근까지 5% 정도에 머물던 태양광 전환 효율을 8% 수준까지 높였다. 비결은 해조류의 원리를 이용한 덕분이었다. 바닷속에 있는 해조류는 태양빛을 온전히 받기 어렵다. 이로 인해 햇빛 중 바닷속까지 도달하는 파장만을 선택적으로 활용해 광합성을 한다. 이 때문에 약한 파장만으로도 많은 에너지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진화했다. 이 교수는 인공 나뭇잎이 해조류처럼 햇빛의 서로 다른 파장대를 나눠 이용할 수 있도록 2개의 광촉매물질을 병렬로 연결한 소재를 개발했다.
이 교수는 “상대적으로 값싸고 안정적인 산화물을 이용한 광촉매 중에서 8% 효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이번 연구는 인공 나뭇잎 기술의 상용화 기준으로 여겨지는 효율 10%를 턱밑까지 쫓아가는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기술로 3년 내에 효율 10%를 달성해 ‘재생에너지형 수소 충전소’를 세우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이제 막 보급되기 시작한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에 값싼 수소를 공급하는 기술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위 ‘21세기판 연금술’이라고까지 불리는 인공 광합성은 글로벌 연구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분야다. 한국은 물론 미국 인공광합성공동연구센터(JCAP), 일본 문부과학성,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등이 국가 연구개발(R&D) 과제의 일환으로 인공 광합성을 지원·연구하고 있다.
미국은 2010년 에너지부의 주도로 에너지 혁신 허브 차원에서 JCAP를 설립했다. 미국 내에서 가장 큰 인공 광합성 연구소인 JCAP의 주요 임무는 태양빛과 물·이산화탄소만으로 연료를 생산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다. 2010년 이후 지난 5년간은 인공 광합성을 통한 수소 생산을, 지난해 10월부터는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이를 통해 메탄올(CH3OH)과 같은 액체연료를 생산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인공 광합성 연구에 대한 미국 행정부와 정치권의 지원은 부러울 정도다. 연간 연구예산이 원화로 178억원에 달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11년 국정연설에서 ‘JCAP의 인공 광합성 연구는 우리 시대의 아폴로 프로젝트’라고까지 평가했다.
대표적 정부 출연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도 인공 광합성을 연구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홍릉의 KIST 청정에너지연구센터가 지난 7월 개발한 인공 광합성 디바이스 시스템. [사진 KIST]
사실 국가 차원의 인공 광합성 연구는 한국이 미국보다 1년 빨랐다. ‘녹색성장’을 부르짖던 이명박 정부는 2009년 ‘기후변화대응기술개발사업’이란 이름의 인공 광합성 연구를 국가 R&D 과제로 채택했다. 이 사업에는 10년(2009~2019년) 동안 총 465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절대금액은 미국의 4분의 1 수준이지만 경제 규모를 놓고 비교하면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이 연구의 목표는 태양광을 이용해 물과 이산화탄소에서 메탄올 등 액체연료를 고효율로 생성할 수 있는 기초·원천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서강대 자연과학대학장인 윤경병(60) 화학과 교수가 연구 책임을 맡았다. 윤 교수는 서강대 캠퍼스 내에 한국인공광합성연구센터(KCAP)를 설립해 인공 광합성 연구를 해 오고 있다. 연구 3단계에 이른 현재는 태양에너지 대비 효율 약 2% 수준의 알코올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업이 종료되는 2019년이면 효율 3%의 목표를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JCAP와 차이점이라면 태양광발전으로 얻은 전기를 이용해 물과 이산화탄소에서 메탄올과 같은 연료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 방법을 쓰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효율을 올릴 수 있다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윤 교수는 “인공 광합성을 상용화하기 위한 기반은 예정대로 2019년 완성될 것”이라며 “2030년께면 한국은 물론 다른 선진국들도 인공 광합성을 이용해 액체연료를 만들어 생활 중에 널리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연료가 이산화탄소가 되면 다시 그 이산화탄소를 연료로 바꾸는 ‘탄소 순환’이 된다”며 “인공 광합성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인류는 더 이상 화석연료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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