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한만호 KIST 청정신기술연구본부 청정에너지연구센터 박사후연구원, 전아리 에너지저장연구센터 학생연구원, 김명근 수소·연료전지연구센터 박사후연구원이 10월 31일 KIST 연구동에서 동아사이언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KIST 제공.
[편집자주] 과학자들의 연구성과는 보통 논문으로 공개됩니다. 연구기관의 책임연구원이나 대학의 교수들이 연구를 주도하는 ‘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리지만 논문의 ‘1저자’는 보통 박사후연구원이나 박사급 연구원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빛나는 시기 연구에 대한 열정도 가장 뜨거운 이들의 역량은 미래 과학기술 경쟁력, 나아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됩니다. 청년 과학자들에 대한 지원체계를 갖추기 위한 정책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청년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는 쉽지 않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기초과학연구원(IBS)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포스텍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청년 과학자들의 꿈과 현실, 미래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룹인터뷰 시리즈를 게재합니다. 국내 모든 청년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을 순 없겠지만 이들의 이야기가 과학계에서 작지만 힘있는 ‘울림’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한국은 인적 자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인력 유입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예산 분배와 지원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국내 청정에너지 신기술 연구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지만 아직 기초 연구 분야인 만큼 좋은 인적 자원이 지속적으로 확보돼야 실질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청정신기술연구본부에서 근무하는 김명근 수소·연료전지연구센터 박사후연구원, 전아리 에너지저장연구센터 학생연구원, 한만호 청정에너지연구센터 박사후연구원은 입을 모아 이같이 말했다. 이들은 온실가스 배출과 자원 고갈에 대한 염려 없이 지속 사용 가능한 연료를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고 환경 오염을 줄이기 위한 탄소중립 신기술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KIST의 수평적인 연구 환경이 만족스럽지만 실적에 대한 부담 또한 공존한다고 밝혔다. 연구자 생활이 쉬운 건 아니지만 노력한 만큼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후배 연구자들을 독려했다. 이들은 “연구자의 길이 쉽진 않지만 보상이 공정하게 돌아오는 분야다. 힘들게만 생각하지 말고 과정을 즐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Q. KIST 청정신기술연구본부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한만호 박사후연구원(이하 만호)= 이름 그대로 ‘청정 신기술’을 연구하는 본부로, 기존에 신재생에너지라고 부르던 기술을 연구한다고 보면 된다. 수소 생산을 연구하기도 하고 리튬배터리 다음 세대를 연구하거나 이산화탄소를 청정연료로 전환하는 연구, 바이오매스를 이용한 연료를 생산하는 연구도 있다. 석유 연료 대신 깨끗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연구를 하는 본부로 결국 탄소중립사회를 이루는 게 본부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볼 수 있다.
한만호 박사후연구원이 인터뷰 질의에 답하고 있다. KIST 제공.
Q. KIST 연구 환경이나 연구실 분위기는 어떤가.
김명근 박사후연구원(이하 명근)=KIST는 친구처럼 수평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서로 어려움이 있으면 도와주는 부분들이 많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연구가 가능하다. 자신이 원하는 연구가 있으면 지지를 해주기 때문에 주도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주도적인 연구들을 할 수 있다.
만호=비슷한 생각이다. 조직 문화가 수평적이고, 나 또한 그런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KIST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연구자의 길을 이어나가는 동안 이런 문화를 계속 지켜나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Q. R&D 예산 삭감 관련, 현장에서 실감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명근=아직 팀이나 본부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어서 직접적으로 실감하는 부분은 많지 않다. 하지만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전아리 학생연구원(이하 아리)=학생이라 직접적으로 느끼는 여파는 없지만 내년 재료비를 현재보다 아껴야 한다고 하더라. 만약 인원도 줄여야 한다면 학생으로서 고용 불안을 느끼게 될 거 같다.
만호=프로젝트 관리자는 아니어서 당장 체감하는 건 없다. 하지만 내년에는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부분이 있을 거 같다. 재료비 삭감은 시살상 거의 확정된 상황이라서 신규 연구를 계획하고 있는 부분들이 지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궁극적으로 프로젝트 결과 도출이 늦어질 수도 있겠다.
Q. 연구자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고충이 있다면.
명근=전 세계에서 수많은 연구자들이 계속 새로운 걸 만들어내다 보니, 계속 학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좀 있는 직업 같다. 평가받을 때는 1년 또는 3년 실적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지적인 호기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다가도 실적을 위한 연구를 같이 병행해야 한다는 부담감 또한 존재한다. 실적에 대한 부담, 공부에 대한 부담 등이 항상 존재한다.
아리=연구 분야를 계속 쫓아가야 한다는 부분이 힘들게 느껴진다.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런 정신적 고충이 반복된다.
Q. 그래도 우리나라 연구환경이 이런 건 좋다 자랑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 않나.
만호=실험실에서 서로 간 의사 교환이 자유로운 편이고 지도를 해주는 선배 연구자들과도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선배들이 이러한 문화를 만들었고 우리는 따라가는 입장이지만 분명한 장점이 있는 것 같다. 공동연구도 활발한 편이다. KIST가 아무리 인프라가 좋다고 해도 모든 인프라를 갖출 수는 없는데, 인프라가 갖춰진 기관에 연락해 함께 공동연구를 하는 문화가 잘 정착돼 있다. 연구자들이 공동연구에 대체로 마음이 열려 있는 편이다.
전아리 학생연구원이 인터뷰 질의에 답하고 있다. KIST 제공.
Q. 연구 외 행정 업무 등에 대한 부담은 없나.
명근=학교에 있을 땐 행정 업무까지 같이 봐야 한다는 점에서 시간적으로 소모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KIST에서는 행정 업무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분들이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한 부담이 적다. 과제 프로젝트에 대한 보고서 정도의 업무는 물론 직접 수행하고 있지만, 부가적으로 부담이 갈 수 있는 업무들은 센터마다 배정된 선생님들이 봐주고 있다.
Q. 과학 관련 규정이나 정책 중 개선됐으면 하는 부분은 없는지.
명근=아직 규정에 크게 제약을 받는 포지션은 아니기 때문에 개선됐으면 하는 것보단 이런 제도가 생겼으면 하는 게 있다. 선배 과학자들과의 멘토·멘티 제도가 생기면 어떨까 제안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연구를 접한 학생이 지도 교수 외에 좀 더 편하게 의견을 나누고 배우고 고민 상담을 할 수 있는 멘토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학위 과정에서 해본 적이 있다.
아리=학교생활을 할 때 기존 인턴이 나가고 새 인턴이 들어올 때 둘 사이에 겹치는 시기가 없어 생기는 불편을 경험한 적이 있다. 인턴이 들어올 때마다 새로 알려줘야 한다는 점에 많은 시간을 쏟게 된다. 이런 부분이 좀 더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개선됐으면 한다.
Q. 네이처 편집장이 대중의 과학 불신에 우려를 표한 적이 있다.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도 대중이 불신하거나 반대로 맹신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나.
명근=어려운 내용인 만큼 과학이라는 이름만으로 신뢰받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는 거 같다. 이럴 땐 좀 더 쉽게 연구를 설명하거나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소 분야는 수소 폭발에 대한 걱정들을 하는 것 같다. 수소 폭탄이라는 이름 때문에 막연하게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앞으로 화석연료에서 수소연료 사회로의 전환이 이뤄질 텐데, 이 과정에서 안전성 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이뤄져야 원활한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아리=2차 전지 분야는 지난해 주식 열풍이 불면서 무분별하게 많은 정보가 양산됐다. 이로 인해 편향된 정보만 수용하고 맹신하는 부분들이 생겨 우려스러웠다. 정보를 선별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면 갈등이나 오해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거짓된 정보 또한 줄어드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만호=일반인은 연구자에 비해 정보량이 굉장히 적기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생기는 것 같다. 코로나19처럼 기존에 접하지 않았던 것이 갑자기 크게 이슈화되면서 정보들이 단기간 폭발하게 되면 잘못된 정보들도 섞이게 된다. 정보는 개인의 취사선택이라는 점에서도 정보 신뢰도에 차이가 생기는 것 같다.
김명근 박사후연구원이 인터뷰 질의에 답하고 있다. KIST 제공.
Q. 현재 연구 중인 분야의 국제적 입지는 어디에 와 있는가.
명근=수소 전기차에 들어가는 연료전지 분야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상용 수소차, 선박, 비행기 등을 이미 만들고 있는 단계다. 수소 생산 파트의 대용량 설비 측면에서는 유럽 등에 비해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기술 측면에서는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설비에 대한 지원, 투자만 늘어난다면 전반적으로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리=이차 전지 분야는 2019년 이 분야에서 노벨화학상이 나올 정도로 국제적으로 많은 연구가 이뤄지는 분야인데, 우리나라는 생산 부분에서 국제적 입지를 다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량 공급 쪽으로 특화돼 있는데 이 부분은 인적 공급이 뛰어난 중국이 언젠가 따라잡을 수 있는 부분이어서 원천기술 연구개발이 지속돼야 한다고 본다.
만호=국내 학교와 연구기관들의 수준은 높은 편이다. 최상위권 논문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는 만큼 연구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정량적인 수치로 보면 미국, 유럽보다 적을 수 있지만 연구 역량은 충분하다고 본다. 앞으로도 기초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가 핵심기술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Q. 정책 입안자나 기성세대 과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만호=우리나라는 인적 자원만으로 R&D 역사를 발전시켜왔다. 도전과 실패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반도체, 통신, 조선, 건설 등에서 제조업 강국으로 올라섰다. 그런데 지금 국가에서 어젠다로 올려놓은 분야는 신재생에너지 기술들이 많다. 상용화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분야로, 기초 연구가 오랜 기간 지속돼야 하는 분야다. 이를 위해선 인적 자원이 매우 중요하다. 반도체는 결국 인력이었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우리 분야도 그렇다. 인적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관점으로 예산을 분배하고 지원해줬으면 한다.
Q. 연구원이 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명근=과학은 정말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불과 15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이 없었다. 기술개발에 의해 세상이 정말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에 없었던 것을 만드는 희열을 느끼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꿈이 있다면 연구자가 되길 추천한다.
아리=과학자를 꿈꿨을 땐 실험을 좋아하고 논문만 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연구자 생활을 해보니 실험을 기획하고 직접 실험을 진행하고 논문 쓰기도 잘해야 하고 ppt 발표 자료를 만들고 발표하는 능력도 뛰어나야 한다. 종합 예술같이 여러 능력을 요구하는 직업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뭔가 하나를 탐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면 적성에 잘 맞을 수 있다. 단 많은 능력을 요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마음의 준비를 잘했으면 한다.
만호=연구는 연구자가 기획을 해서 이론적이건 실험적이건 증명을 해나가는 과정인데, 그 과정이 분명히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 과정을 겪고 결과물을 만들었을 땐 보상이 매우 공정하게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어떤 분야보다 본인이 노력한 만큼 성과가 돌아오는 분야가 연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인이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해나간다면 빛나는 성과가 있을 것이다. 힘들게만 생각하지 말고, 과정도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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